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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한국, '여성의 경제적 기회' 190개국 중 65위

한국이 여성에 부여하는 경제적 기회의 수준이 세계 65위에 머문다는 세계은행 분석이 나왔다.지구촌 전체를 보면 여성에게 경제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는 나라가 14개국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나왔다.3일(현지시간) 세계은행(WB) 홈페이지에 공개된 '여성, 기업, 법 2023' 보고서에 따르면 190개국을 대상으로 여성의 경제적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제도를 평가한 여성·기업·법 지수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85.0점을 기록했다. 이는 190개국 전체 평균 77.1점보다 7.9점 높은 점수다.한국은 '이동의 자유'와 '취업', '결혼', '자산', '연금' 등 항목에서 만점인 100점을 받았다. 자녀를 가진 여성의 직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 있는지를 살피는 '출산' 항목에서 80점, '기업가 활동'에선 75점이 나왔다. 한국은 여성의 급여와 관련한 법규를 평가하는 '임금'에서는 25점을 받아 최하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는 한국의 종합순위가 유럽 선진국에 한참 뒤떨어져 65위까지 밀린 주된 원인이었다.이 항목에서 한국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한 곳은 아프가니스탄(0점), 아제르바이잔(0점), 이집트(0점), 기니비사우(0점), 쿠웨이트(0점), 수단(0점), 시리아(0점), 우크라이나(0점), 서안·가자지구(0점) 등 9곳에 불과했다.모든 항목에서 만점을 기록해 법적 남녀평등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국가는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등 14개국이었다.미국은 91.3점으로 38위였고, 일본(78.8점)과 중국(78.1점)은 각각 104위와 109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연구진은 1970년 당시만 해도 45.8점에 불과했던 전 세계 평균 점수가 올해 77.1점으로 크게 올랐지만, 최근 들어서는 갈수록 개선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실제, 올해 전 세계 평균 점수는 작년(77.0점)보다 0.1점 오르는 데 그쳤다. 190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2022년에 성별 관련 제도개선을 한 국가는 18개국에 불과했다.세계 곳곳에서 법제도 개선 노력이 봇물 터지듯 잇따랐던 2002∼2008년 정점을 찍은 이후 이른바 '개혁피로'가 가시화한 결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사우디아라비아(71.3점)와 아프가니스탄(31.9점)처럼 오히려 여성·기업·법 지수가 하락한 국가도 있었다.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거주지 선택권과 해외여행을 제한하고 남편에 복종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아프가니스탄은 2021년 미군 철수 이후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이 여성의 직업 선택을 제한하고 역시 출국을 제한한 것이 점수하락의 배경이 됐다.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아직도 24억명에 이르는 경제활동가능 연령대 여성이 여성에 차별적인 법체계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의 개선 속도로는 완전한 법적 남녀평등 구현까지 최소 50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그러면서 "세계 경제 성장 둔화 국면에서 각국은 여러 위기에 맞서기 위해 생산능력을 총동원할 필요가 있다. 여성이 피고용인과 기업가로서 경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은 국가경제를 더 역동적이고 탄력적이게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서지영 기자 seojy@edaily.co.kr 2023.03.04 18:07
연예일반

'차클' 국제정치전문가 이근욱 전한 미국 실패 전쟁 20년史

이근욱 교수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분석했다. 지난 5일 방송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는 이근욱 교수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관해 설명했다. 2001년 9.11 테러 발생 후 미국은 곧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테러의 배후였던 알카에다의 수장 빈 라덴을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정권이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빈 라덴 소탕과 테러 조직에 협조하는 탈레반 정권 축출을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개시한 미국은 테러 발생 102일 만에 탈레반 정권을 제거했다. 순조롭게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내에 민주 정부를 수립하려 했다. 왜 새로운 정부까지 세우려 했는지 묻는 학생의 말에 이근욱 교수는 "미국은 테러의 근거지 자체를 없애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정상적인 국가를 설립하려 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완전한 철수와 동시에 탈레반 세력이 수도 카불을 장악, 전쟁 20년 만에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하게 됐다. 세계 군사력 1위 국가인 미국이 20년이란 시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근욱 교수는 "최고의 군사력으로도 제거할 수 없던 적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바로 양귀비와 아편이다. 세계 아편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최대의 아편 생산국인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침공 이후 탈레반은 아편으로 자금을 모아 재건에 성공,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서 거대한 마약 조직으로 거듭났다. 이를 방관하고 분석하지 못한 미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2년 뒤 미국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테러 조직과 연계되어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침공 후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은 무너졌고, 그 자리에 친미 정권이 세워졌다. 기존의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을 필두로 한 소수의 수니파가 다수의 시아파를 억압하는 상황. 하지만 미국 침공 이후 정권을 잡은 시아파는 수니파를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하며 두 종파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종파 분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수니파는 극단주의 테러 집단과 손을 잡게 됐다. 이는 곧 강력한 테러 집단인 IS의 탄생과 이어졌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20년의 역사를 함께 살펴본 이근욱 교수는 끝으로 "미국은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전쟁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보았고, 이런 무지와 오만으로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치렀다.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군사력 사용에 대해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는 12일 유라시아를 탐험하는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와 함께 '피 튀기는 황금 유물 쟁탈전'이라는 주제로 '전쟁의 시대' 시리즈 세 번째 강연을 이어간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방송된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oongang.co.kr 2022.06.06 21:14
스포츠일반

아프간 선수들 도운 세계태권도연맹 “평화가 승리보다 소중하다”

세계태권도연맹(WT)이 2020 도쿄패럴림픽 출전이 불가능해 보였던 아프가니스탄 선수들이 도쿄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 대표팀의 여자 태권도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와 남자 육상선수 호사인 라소울리(26)는 패럴림픽 출전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정권을 재장악하면서 카불 공항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들은 결국 수도 카불을 탈출하지 못했고,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위원회(APC)도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집안에 갇혀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전 세계를 향해 자신들이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호주 정부의 도움으로 이들은 극적으로 카불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동안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두 선수의 신변 보호를 위해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아프간 대표팀 선수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이들은 프랑스의 스포츠 훈련 센터인 프랑스 국립스포츠연구원(INSEP)에서 훈련과 휴식을 병행하다 지난 28일 도쿄에 입성했다. 이들은 출국 전 두 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고,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후 진행한 코로나19 검사에서도 음성 판정을 받았다. 불가능해 보였던 아프간 선수들의 패럴림픽 출전이 가능해 보이자 IPC와 APC는 여러 정부, 인권 단체 등이 두 선수의 도쿄행을 물밑에서 지원한 것에 관해 감사함을 전했다. IPC의 앤드류 파슨스 회장은 “여러 정부의 뛰어난 노력 덕분에 자키아, 호사인 등이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도쿄에 있으며,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재도 “자키아와 호사인이 도쿄에 도착해 역사적인 패럴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돼 기쁘다. WT는 성별, 국적, 능력 등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스포츠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며 “역경을 극복하겠다는 두 선수의 의지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IPC와 스포츠 인권 센터,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우리가 이 파트너십의 일원이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스포츠는 평화를 증진하고 희망을 키우는데 강력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평화가 승리보다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연맹은 쿠다다디의 대체 선수를 발탁하지 않고 그의 출전을 기다렸다. 당초 아프가니스탄 선수들의 출전이 불투명해지면서 지난 24일 도쿄패럴림픽 개회식에선 선수단 없이 아프가니스탄 국기만 다섯 번째로 입장했다. 자원봉사자가 국기를 들었다. 쿠다다디는 다음달 2일(49㎏급·스포츠등급 K44), 라소울리는 3일 남자 육상 400m(스포츠등급 T47)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김영서 인턴기자 2021.08.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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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올해 개봉작 최초 300만 관객 돌파...배우 인증샷

영화 ‘모가디슈’가 올해 개봉작 중 최초로 누적 관객 300만 명을 돌파했다.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모가디슈’는 개봉 33일째인 29일 오전 누적 관객 301만3000여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모가디슈’는 마블 ‘블랙 위도우’의 최종 스코어(295만 명)를 제치고 2021년 개봉 영화 최초 300만 돌파작이 됐다. ‘모가디슈’는 개봉 이후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4주 연속 박스오피스 TOP3 입성 등 흥행 코스를 밟아왔다. 최근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영화 ‘모가디슈’를 떠오르게 한다는 평이 이어지며 재차 이목을 모았다. ‘모가디슈’를 본 관객들은 “카불이 현실 ‘모가디슈’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성이 모호해지고 있다” 등의 의견을 전했다. 실제로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고립된 남북한 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300만 돌파 소식과 함께 ‘모가디슈’의 주역들이 감사의 편지를 공개했다. 각자 개성 있는 손글씨로 류승완 감독부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김재화, 박경혜 배우가 ‘300만’ 인증샷에 참여했다. 강혜준 인턴기자 2021.08.29 13:08
스포츠일반

“패럴림픽 출전 도와달라” 아프간에 발 묶인 태권도 선수 간청

아프가니스탄 여자 장애인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가 2020 도쿄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출전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18일(한국시간) 로이터통신은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 대표팀의 아리안 사디키 단장이 쿠다다디의 영상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쿠다다디는 가족과 함께 지내지만, 훈련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할 자신이 없어 외출할 수 없는 상태라며 “감금된 기분”이라고 전했다. 쿠다다디는 남자 육상 선수인 호사인 라소울리(24)와 함께 지난 16일 출국해 오는 24일 도쿄에서 열리는 도쿄패럴림픽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 이후 탈출 인파로 인해 공항이 마비되면서 수도 카불을 떠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 위원회(APC)는 결국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쿠다다디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패럴림픽 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게 됐다. 그러나 쿠다다디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사디키 단장에게 전한 영상메시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대표로서 도움을 청한다”며 “도쿄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게 나의 목표다. 내 손을 잡고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이어 “전 세계 여성들과 여성 보호를 위한 기관, 모든 정부 기관에 촉구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패럴림픽에 출전할 권리를 이렇게 쉽게 빼앗기지 않도록 해주기를 부탁한다”라며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나의 노력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 도와달라”며 거듭 도움을 요청했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1996~2001년) 당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으로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학교와 직장에 다니지 못했다. 특히 부르카(눈 부위의 망사를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목까지 덮는 의상) 착용을 강제했다. 20년 만에 정권을 탈취한 이후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냈으나 인권 탄압을 우려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김영서 인턴기자 2021.08.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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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만 돌파 ‘모가디슈’에 아프간 사태는 흥행 호재? 악재?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200만 관객을 돌파한 ‘모가디슈’의 흥행에 호재일까, 악재일까.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함락한 아프가니스탄이 영화 ‘모가디슈’와 데자뷔가 느껴지는 건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겠다. 영화 ‘모가디슈’의 30년 전 실화가 현재에 벌어지고 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내 전원 철수하고, 수도 카불을 비롯한 전역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탈레반의 횡포를 피해 조국을 탈출하려는 이들로 연일 시끄럽다. 주아프간 한국 대사관도 15일 잠정 폐쇄 결정 후 대다수 공관 직원들과 재외국민들이 현지를 떠났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해 죄 없는 시민들을 탄압하는 공포의 현장은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모가디슈’의 장면과 똑같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실화 바탕의 영화다. 남북한 대사관의 협력, 목숨을 건 탈출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흥행몰이 중이다. 17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오전 9시 기준) ‘모가디슈’는 누적관객 244만여 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시국 속 어렵사리 극장 개봉한 ‘모가디슈’를 관람하기 위한 관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천만감독 류승완의 연출, 배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정만식 등의 열연, 스펙타클한 영상미가 하모니를 이루며 불 꺼진 극장가에 모처럼 환한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모가디슈’가 막을 올리자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터지면서 영화와 현실이 오버랩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소말리아 내전 발발 후 30년이 지나 영화화된 이야기가 다시 발생했다는 사실은 씁쓸하고도 안타깝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은 물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관객에게 간접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서지수 인턴기자 2021.08.17 12:07
스포츠일반

'탈레반 장악'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출국 못해 도쿄패럴림픽 출전 좌절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장악으로 공항이 마비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이 2020 도쿄 하계패럴림픽 대회(장애인올림픽)에 불참하게 됐다.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 위원회(APC)의 아리안 사디키 단장은 17일(한국시간) 런던에서 진행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도쿄 하계패럴림픽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아프가니스탄 두 명의 선수가 참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두 선수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에서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의 크레이그 스펜스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 선수단 및 관계자가 안전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수도 카불을 점령하는 등 현지 정국이 혼란스러워진 탓이다. 탈레반 지도부는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카불이 함락됐다는 소식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시민 수천 명이 공항에 몰려 아수라장이 됐다. 아슈라프 가니(72) 대통령도 다량의 현금을 갖고 국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번 대회에 총 2명의 선수를 파견할 예정이었다. 여자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와 남자 육상 선수 호사인 라소울리(24)는 16일 비행기에 탑승해 17일 도쿄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변으로 인해 불행하게도 대표팀은 제때 카불을 떠날 수 없었다. 사디키 단장은 탈레반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물가가 치솟아 대표팀이 항공편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대표팀 소속의 두 선수는 지난주까지 패럴림픽 출전 준비에 전념했었다. 특히 IPC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꿈과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쿠다다디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했다”며 “아프가니스탄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패럴림픽에 나가게 됐는데, 장애를 가진 많은 여성에게 희망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꿈은 탈레반의 정권 장악으로 산산조각이 됐다. 사디키 단장도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그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들은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했다. 공원이나 뒷마당 등 가능한 모든 곳에서 훈련하며 대회를 준비했다”며 “아프가니스탄은 최근 수십 년간 올림픽·패럴림픽 모두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 선수단을 파견하며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전했는데,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 탈레반 시대에는 선수들이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특히 여자 운동선수들은 더욱 그랬다”며 “쿠다다디는 아프가니스탄 여자 태권도 선수로는 처음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역사였고, 그도 참가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프가니스탄은 1996 애틀랜타 패럴림픽에 처음 선수단을 파견한 후 2004 아테네 패럴림픽부터는 꾸준히 선수단을 내보냈다. 한편 오는 24일 개막해 다음 달 5일 폐막하는 도쿄패럴림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으로 인해 무관중으로 치러진다. 김영서 인턴기자 2021.08.17 11:39
스포츠일반

기적의 아프간, 9·11의 악몽-9·11의 환호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날이다. 아프가니스탄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배후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총성과 포연은 아프가니스타의 일상이 됐다. 미국에 의해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종족 간의 갈등과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다시 반군이 정부를 장악할 가능성도 크다.9.11테러 12주년이었던 지난 11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은 모처럼 하나로 뭉쳤다. 집과 식당, 사무실은 물론, 마을 앞 공터까지 TV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상대를 겨눴던 총도 잠시 내려놓았다. 네팔 카투만두에서 열린 남아시아축구연맹(SAFF) 결승전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의 결승전 때문이다. 2년 전 결승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에 0-4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인도는 남아시아연맹에서는 10번이나 정상을 밟은 지역의 맹주다. 그러나 이날은 아프가니스탄이 경기 내내 인도를 몰아붙이며 2-0으로 승리했다. 아프가니스탄이 국제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1922년 아프간 축구협회 설립 후 처음이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아프가니스탄 전역은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AP는 ‘증오가 아닌 축제를 위한 총탄이 공기를 갈랐다’라며 ‘수도 카불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거리로 나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경기 후 약 한 시간동안 축포 소리가 이어졌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1948년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아프가니스탄은 이해 열린 런던올림픽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한 저력의 팀이다. 그러나 긴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1970년대 구소련의 침공을 받아 국제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탈레반 정권은 스포츠를 탄압했다. 경기장은 이슬람 율법을 배우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 다시 축구가 시작됐다. 2003년 이 대회에서 3연패로 탈락했던 아프가니스탄은 딱 10년 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의 젊은이들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며 기뻐했다. 김민규 기자 gangaeto@joongang.co.kr 2013.09.13 09:50
축구

포화 견딘 아프가니스탄, 10년 만에 축구 되찾다

흔하디흔한 축구 국가대항전이 누군가에겐 10년 동안 겪지 못한 소중한 경험이다. 아프가니스탄은 21일(한국시간) 수도 카불의 아프가니스탄축구협회(AFF) 스타디움에서 파키스탄과 친선 경기를 갖고 3-0으로 승리했다. 2003년 투르크메니스탄을 1-0으로 꺾은 뒤 10년 만에 치른 홈경기였다.아프가니스탄은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혼란기를 겪었다. 1954년 당시 아시아축구연맹(AFC) 창설 멤버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아프간 축구는 1980년대부터 국제 무대에서 실종됐다. 탈레반 정권(1996~2001)은 유서깊은 가지 스타디움을 공개 처형 장소로 변질시켰다. 아프간 대표팀은 2002년부터 다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전쟁을 치르는 등 이어진 시련으로 홈경기를 가질 수 없었다. 종종 상대 국가 입국을 거부당해 원정 경기조차 치르기 힘들었다.아프간 땅에서 축구가 부활 조짐을 보인 건 지난해 9월부터였다. 8개팀으로 구성된 아프간 최초 프로 리그가 출범해 큰 화제를 모았다. 리얼리티 쇼를 통해 선수를 선발하는 등 떠들썩하게 시작된 프로 리그는, 아프간 사람들이 혼란 속에서도 스포츠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9위 아프간과 167위 파키스탄의 친선 경기는 두 국가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자는 취지로 성사됐다. 양국간 A매치는 36년 만에 처음이었다. 실력은 아프간이 한 수 위였다. 전반 20분 산자 아흐마디의 골로 앞서간 아프간은 전반 32분 하라쉬 아테피, 후반 26분 마루프 마흐무디가 추가골을 넣어 대승을 거뒀다. 새로 건설된 AFF 스타디움을 메운 관중 6000명은 열광적인 응원을 펼쳤다. BBC와 인터뷰를 가진 공무원 샤비르 아흐마드(27)는 "이 경기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 경기가 양국 친선을 도모하려는 취지에서 열렸다 하더라도 아프간과 파키스탄은 라이벌"이라며 선수들 못지않은 투지를 불태웠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승리의 기쁨이 전국으로 퍼졌다. BBC는 "수십 년동안 전쟁과 빈곤에 고통받은 사람들이 광란에 가까운 축하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AFF의 사예드 아가자다 사무총장은 "이 경기는 아프가니스탄이 힘든 시절을 끝내고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아프간 축구는 체계와 시설 등 여러 면에서 발전하고 있다. 축구가 더 성장할거라 믿는다"는 희망을 밝혔다. 파키스탄 축구협회도 이 경기가 양국 우호를 증진할 거라는 희망을 전했다. 김정용 기자 cohenwise@joongang.co.kr 2013.08.21 07:11
연예

[차길진의 미스터리Q] 223. 2인자

지난 1일, 미국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됐다. 작전명은 '제로니모 작전 중 사망'. 미국 측 발표에 의하면 그는 비무장상태로 부인과 딸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의 시신은 아라비아 해에 수장됐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사망 당시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 끔찍하다는 것. 사망당시 사진도, 시신도, 그의 죽음을 증언할 사람도 없다. 뭔가 미심쩍고 석연치 않은 구석은 많지만 공식적으로 미국도, 탈레반도 그의 사망을 인정한 상태다. 나는 빈 라덴의 사망소식을 접하는 순간 2인자들의 허망한 죽음이 뇌리를 스쳤다.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에르빈 롬멜. 1891년 부유한 독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아프리카 군단을 이끌며 연전연승했다. 연합국과 아프리카 영국 군대는 롬멜을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했다. 오죽하면 영국 수상이던 처칠이 의회 공식 연설에서 전쟁과 상관없이 롬멜을 위대한 장군이라 평한다고 했겠는가. 하지만 롬멜은 1944년 히틀러 암살 작전을 공모한 죄로 히틀러가 보낸 게슈타포에 둘러싸여 자살한다. 그가 히틀러 암살을 주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평소 롬멜이 히틀러에 보낸 충성심은 대단했다. 그런 그가 과연 히틀러를 죽일 생각을 했었을까. 아마도 반대가 아니었나 싶다. 히틀러는 잘 알려진 대로 질투심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었다. 콤플렉스와 시기심·의심 등 인격적 결함이 많았던 그에 비해 롬멜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부유하며 귀족적인 가정환경, 뛰어난 지도력과 실전감각, 최고의 장군이라 평가받는 세계인들의 시선까지. 결국 히틀러는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롬멜을 죽인다. 2차 세계대전이 낳은 위대한 장군 롬멜은 게슈타포가 건넨 청산가리를 먹고 자신의 벤츠 안에서 눈을 감았다. 마치 모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그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했다. 아르헨티나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죽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의 길을 걷던 그는 남미여행으로 자신의 진로를 완전히 바꾼다. 혁명의 꿈은 현실이 되어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의 친미독재정권인 바티스타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하지만 카스트로가 자신의 동생을 2인자로 내세우자 볼리비아로 떠나 바리엔토스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다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혀 총살된다.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 역시 체 게바라를 죽게 방치했다는 게 맞다. 충분히 그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카스트로에게 체 게바라는 히틀러에게 롬멜과도 같은 언젠가 없애야할 빛나는 2인자였던 것이다. 나의 부친인 차일혁 총경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 중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했다. 박헌영과 더불어 2인자였던 그의 죽음에 북측은 어떠한 군사적 도움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이현상은 북의 애국렬사능에 제1호로 묻혔으며 그의 가족들은 중앙공산당 핵심직을 맡고 있다. 역사는 2인자들의 최후에 침묵한다. 나는 빈 라덴이 실질적인 1인자가 아니었음에 씁쓸했다. 잘난 2인자는 결국 1인자에게 죽는다. 탈레반의 실질적 리더는 아직 살아있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 2011.05.2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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